⑤ 바알 성전과 바티칸의 비교

이스라엘 인근지역의 바알은 태양신이므로 바알숭배의 풍속은 바알의 기둥, 곧 태양기둥을 세웁니다.
아래의 구절은 이것을 제거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왕하 23:14
왕이 또 석상(마쎄바)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위 구절의 "석상"이 원어로 " 마쎄바" 로써 태양기둥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알의 기둥을 세운 후 그 둘레에 작은 상들을 둘러 세웁니다.
바알의 기둥, 곧 "마쎄바"가 태양기둥, 곧 오벨리스크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구절을 보면 확실해 집니다.

렘 43:13
그가 또 애굽 땅 벧세메스의 주상(마쎄바)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집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위 구절은 이집트의 태양숭배행태를 지적한 것인데,
위 구절에서 벧세메스의 "주상" 이 "마쎄바"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벧세메스"라는 이름은 집을 뜻하는 "벧"과 태양을 뜻하는 "세메쉬"가 합해진 단어입니다.
즉, 벧세메스라는 이름 자체가 태양의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도 벧세메스를 태양의 도시라는 뜻인 헬리오폴리스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의 벧세메스, 곧 헬리오 폴리스의 주상은 누구나가 잘 알다시피 돌로 만든 태양기둥입니다.



그러므로 바알의 우상이 마쎄바로 표현된 것은 바알의 우상이 돌기둥인 오벨리스크임을 나타냅니다.
구약성경에서 사마리아의 바알의 대성전의 파괴를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이 마쎄바가 바알의 대성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하 10:26
바알의 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마쎄바)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마쎄바)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위 구절이 사마리아의 태양신 바알의 대성전을 훼파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보시면 위에서 "목상"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원어로 "마쎄바"입니다.
우선 위 구절을 통해서 당시 바알의 대성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바알의 대성전이 있는 곳이 "당 있는 성"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그 터가 규모가 컸던 것입니다.
"당 있는 성"의 성이라는 단어는 요새를 의미합니다.



바알의 성전처럼 바티칸도 태양기둥, 곧 마쎄바를 갖다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바티칸도 성이라는 점에서 바알의 성전처럼 "당 있는 성"으로 불림에 손색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마쎄바는 돌로 만든 태양기둥 곧 오벨리스크입니다.
그렇다면, 바알 성전의 "마쎄바", 곧 돌로 만든 태양기둥이 왜 불에 탔는가 하고 의아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본디 바알의 기둥은 돌기둥으로 세워 놓지만,
그 둘레에 작은 바알의 상들을 빙 둘러 세워놓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태운것이 "마쎄바"를 태웠다는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들 가운데의 "바알의 마쎄바", 곧 태양기둥은 헐어냈던 것입니다.

왕하 10:26
바알의 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마쎄바)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마쎄바)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이렇듯 바알성전에 바알의 기둥을 세우고 주위에 작은 바알상들을 빙둘러 세우는데,
왜 이런 풍속이 있냐하면 바알이 태양신이므로
태양수레바퀴처럼 바알 주위에 작은 바알상들을 둘러 세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태양숭배의 의미로 건설된 스톤 헨지 역시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되어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북쪽의 바알벡에 건설한 로마인들의 주피터 성전을 보면
바알상들을 빙 둘러 세우는 전통이 육각형의 마당으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주피터 성전이 바알의 성전을 부수고 그 위에 지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듯 태양기둥 둘레에 다른 상들을 빙 둘러 세우는 태양숭배의 관습을 본따서
로마인들이 이스라엘 동편의 거라사 지역의 제우스 성전 앞에
태양기둥을 세우고 그 둘레에 기둥들을 빙 둘러놓은 것입니다.



성전앞에 저런 기둥들을 둘러 놓는 것은 근동 지역의 태양숭배의 소산인 것입니다.
기둥들이 있는 광장 뒤에는 보시다시피 제우스 성전이 있습니다.물론 바티칸 보다는 훨씬 작습니다.
위의 제우스 성전 앞의 원형 광장의 가운데 기둥, 곧 오벨리스크는 이교 신에게 제사를 바치는 기둥입니다.



이처럼 로마인들이 요단강 동편의 제우스 성전 앞에 오벨리스크와 빙둘러 쌓은 기둥들을 만들었는데,
가톨릭이 저것을 흉내내어 바티칸에 기둥을 빙 둘러 세워 둥근 광장을 만들고
그 광장 가운데에 오벨리스크를 갖다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오벨리스크를 정복했다는 과시용으로 바티칸에 갖다 놓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실제 가톨릭은 로마인들이 거라사의 광장의 오벨리스크에서 제사를 지내듯이
바티칸 광장의 오벨리스크 앞에서 종교행사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거라사의 광장의 입구쪽에 보면 긴 도로가 있는데 저 도로는 막시무스 도로라고 불립니다.
바티칸이 거라사, 곧 제라쉬의 성전을 본땄다는 것은 광장 입구부터가 같다는 점입니다.




보시다시피 태양기둥 세워둔 형태나, 광장의 모습이나 똑같습니다.
바티칸의 광장 역시 태양숭배의 의미로 건설된 것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바알의 성전과 바티칸을 계속 비교해 보겠습니다.

왕하 10: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치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오게 하라
무릇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리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궤계를 씀이라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하였더라

예후의 큰 제사를 드린다는 이 속임수로 인해 바알의 성직자들이 바알의 대성전에 모두 모여들게 됩니다.
예후의 말을 곧이 믿고 바알의 성직자들이 몰려왔다는 것은
바알을 위하는 대규모의 대회가 종종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톨릭도 모든 성직자들을 모으는 대회, 곧 공의회를 종종 열어오는 것입니다.



왕하 10:21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두루 보내었더니 무릇 바알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당에 들어가매 이편부터 저편까지 가득하였더라

위 구절에 보시면 "무리가 바알 성전의 이편부터 저편까지 찼다"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바알 성전이 대단히 길고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역시 위에서 보시듯이 엄청나게 깁니다.
총 길이가 무려 230미터이고 현관쪽을 제외한 내부길이만도 187 미터가 되며
입석시 모두 6만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 구절을 계속 보겠습니다.

왕하 10:22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어다가 무릇 바알 섬기는 자에게 주라 하매
저희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이방의 성전에는 거의 옷을 보관하는 방을 따로 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옷을 관리하는 관리자도 있어서 제사를 바칠 때마다 예복을 입었습니다.
즉, 제사를 바칠때의 예복은 늘상입는 제사장복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알의 제사장이 평시에 입는 제사장복은 검은 옷입니다.

습 1: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바알의 제사장들은 늘상 검은 옷을 입고 다녔기에 검다,어둡다는 뜻으로 "그마림"이라고 불린 것입니다.
또한 "그마림"이란 단어는 "자기 고행으로 오그라듦", 즉 자의적 겸손의 행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바알 제사장들은 스스로를 자해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왕상 18:28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신약시대의 적그리스도 체제 역시
이러한 구약시대의 바알의 제사장들의 행태를 따를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골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가톨릭 성직자들이 바알의 제사장처럼 검은 옷을 입고 체발을 하고 스스로 자학하면서 사는 것은
가톨릭 역사 내내의 전통이 되어 온 것입니다.



바알의 대회에서 보듯이 바알 제사장들은 평시에는 검은 옷을 입지만 제사때의 예복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의 제사장들도 평시에는 검은 옷을 입지만 제사때의 예복이 따로 있는데,
평시의 옷색깔과 대비되는 흰 옷입니다.



이처럼 태양숭배교에서는 제사때에 흰 옷을 입는 것이 관례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의 예복이 흰 것이라는 것은 신약성경의 예언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행 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양의 옷이라는 점에서 적그리스도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뿐 아니라,
"이리"라는 단어도 "류코스"라는 것으로써 광명을 말하는데, 문자적으로 "희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듯 적그리스도를 흰 옷을 입고 나아오는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신약시대의 적그리스도를 흰 옷을 입고 나아오는 자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가톨릭의 제사장들은 흰 옷을 입음으로써 이 예언을 성취한 것입니다.

바알의 제사장들이 대회를 열어 바알 대성전에 모이고 모두 예복을 입듯이
가톨릭도 공의회때 수많은 성직자들이 모두 제사때의 예복을 입습니다.



위의 사진은 가톨릭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때의 모습인데,
보시면 모두 흰 옷을 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태양숭배교인 바알 성전의 우상은 당연히 태양신입니다.
가톨릭 역시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태양신을 떡하니 제단 위에 보이게 해 놓은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바알을 숭배하는 건물의 태양우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묘사되었냐 하는 것은
구약성경의 다니엘서에 잘 나와있습니다.

단 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단 9:27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위의 구절에서 보시듯이 미래의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을 세움으로써 멸망하는데,
이것은 아하스와 므낫세가 성전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세우고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과거의 우상숭배행태에 대한 비판과 미래의 우상숭배행태를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두번째 구절에 보시면 성전에 들어선 태양우상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바로 새였던 것입니다.
태양신을 새로 묘사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도 나타납니다.

마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
마 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즉,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의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를 인용하시며 새를 언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직접적으로는 독수리를 앞세운 로마군과의 유대전쟁으로 인한 멸망으로 성취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다니엘처럼 구약시대와 미래의 신약시대를 모두 말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태양신이 새로 묘사되는 것은 성경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이집트,로마의 태양신 숭배행태를 보아도 그러한데 아래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성전에 처음 우상을 도입한 자는 아하스 왕인데,
그는 앗시리아로부터 우상을 도입했습니다.
잘아시다시피 앗시리아의 태양이 바로 날개달린 새였습니다.



보시듯이 앗시리아의 태양이 새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집트도 다르지 않은데, 태양신 라와 태양신 호러스가 새입니다.



또한 이집트의 유명한 불새, 곧 피닉스 역시 태양숭배의 의미이므로
태양의 도시인 헬리오폴리스에서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지중해를 재패하여 모든 문명을 평정한 로마 역시 태양신이 새였습니다.



로마군은 위처럼 장대 위에 "아퀼라에" 곧 독수리같은 새를 올려놓고 다녔는데,
로마의 태양신도 이처럼 새로 묘사되었던 것입니다.
바알의 본 고장인 페니키아부터가 태양을 새로 여겼습니다.



위에 보시다시피 태양이 새입니다.
저 페니키아, 곧 구약성경의 두로와 시돈으로부터 이스라엘에 바알신 숭배사상이 유입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바알숭배를 퍼뜨린 이세벨이 바로 시돈왕 엣바알의 딸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태양신 바알을 섬겼으므로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까지 새를 갖다 놓고 섬긴 것인데,
이런 관행조차도 가톨릭이 따라서 태양을 새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 태양광채 속의 새형상이 하나님이랍시고 저것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의 태양숭배행태가 구약시대의 바알숭배행태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800년 전의 사마리아 바알 성전의 숭배행태는 오늘날 바티칸 성전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⑤ 바알 성전과 바티칸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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