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새로운 제사장은 죄도 사한다

가톨릭은 신부 곧 제사장이 죄를 사해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모든 신도들이 제사장 곧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트렌트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자들에게 죄를 하나님께만 고하여 용서받는 방편들을 주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모든 신도는 의무적으로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성사를 등한시하는것 자체가 또한 죄를 짓는 것이며,
따라서, 고해성사를 고의로 기피하는자는 구원을 못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는 구원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고해성사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제정되었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것이 구원에 필수 요소임을 부인하는 자,
혹은 가톨릭 교회의 태동으로부터 준수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준수되고 있는 전통,
즉 오로지 사제에게만 죄를 은밀히 고백해야 한다는 전통이
그리스도의 규정과 명령에 이질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또한 트렌트회의에 의하면, 그 고해를 행할때는
사제에게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모든 사실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제가 그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제라는 직급자체가 성경을 거스르는 배도적 직급일뿐 아니라,
사람이 죄를 사한다는 이 발상자체도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죄를 사해줄 수 있다면,
굳이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을 당하기까지하여 인류의 죄를 사해주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유일하신 제사장은 오직 예수님뿐이며,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신 예수님뿐입니다.
성경에서 죄란, 하나님의 세우신 기준과 명령을 어긴 것을 말하므로
오직 하나님께서만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구절을 근거로
신부가 고해를 받을 권리가 있고 또한 고해받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한복음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톨릭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오늘날의 신부이며
(가톨릭은 신부가 사도직도 계승했다고 주장함)
따라서, 신부들이 죄를 사하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신 이 말씀은
"죄를 사할 권리가 사도들에게 있으므로,사도들에게 죄를 고백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하신 "죄를 사한다"는 말씀은
누구에게 죄를 들어서 용서하고 안하고를 결정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사도가 복음을 전할때 그 복음을 받아들인 자는 죄를 용서받아 구원받고,
복음을 거절하면 죄를 용서받지 못하여 구원을 못받는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외에 다른 복음서들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신 말씀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막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여기서 보듯이 사도들이 예수님께 받아 전파하는 복음을
믿지 않는 자는 정죄, 곧, 죄를 인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요한복음에서 죄를 사한다는 말씀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어 죄를 사함받고 구원받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이 죄를 사하는 회개를 전파하는 것이라는 말은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눅 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따라서, 요한,마가,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후의 말씀은 모두 같은 목적인 것입니다.
바로 복음을 믿음으로인해 사람들이 죄사함받고 구원을 얻으며,
이 복음을 믿기를 거절하는 것은 정죄, 곧 죄에관해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성경적 논리로 해석해야 됩니다.
가톨릭처럼 요한복음중에 한부분만 찝어서 곡해하고는
그것을 근거로 신부들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다며
"우리에게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그것이 또한 죄니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 모르는 사람을 속여서 사취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가톨릭은 다음구절을 근거로 신부에게 고해를 해야 죄가 용서된다고 주장합니다.

약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가톨릭은 여기 나오는 '장로'가 신부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지 성경에 나온 초대교회의 장로라는 직분에 대한 선정 기준을 봅시다.

딛 1:5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이런 기준하에 뽑힌 사람들이 초대교회이래 교회에 의해 임직된 장로였던 것입니다.
또한 장로와 비슷한 직급인 감독직에 대한 초대교회의 선출기준을 봅시다.

딤전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장로는 가톨릭의 사제개념,즉
교권을 독점한 제사장이라는 직급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장로직은, 제사장이라는 구별된 직급제도가 폐지된 신약시대에,
일반교인중에 믿음있는 자로 여겨져서 대표자로 선출된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신을 하거나, 새로이 제사장직분을 만들어 새로운 교권독점계층에 해당함을 자처하는
사제라는 직급을 가진자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까 그 야고보서에서 장로란, 특권적 권위를 가지는 특화된 교직자를 지칭한 것이 아니고,
단지 믿음있는자, 의로운 자의 예로써 장로직분을 가진자를 거론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로란, 교인들중에서 믿음이 좋다고 인정되어 선출된 자이기때문입니다.
교회의 리더를 믿음 좋은 자의 예로써 제시하는 것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그러합니다.
"믿음 있는 자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말을 "교회의 리더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교회의 리더는 다른 사람보다 믿음이 좋을 것이라고 가정되기 때문입니다.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이처럼 성경에서는 믿음 좋은자의 예로써 교회의 리더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고보서에서 장로의 기도가 잘들어지니 장로에게 고하여 기도받으라는 것은,
특정직급만이 해낼 수 있는 특정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있는 자의 기도가 더욱 인정된다는 일반적 원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특정직급에게만 일방적으로 고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래처럼 "서로서로" 죄를 고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왜냐하면 믿음이 좋은 자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기도가 잘 응답됨에서 보듯이 믿음있는 삶을 사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니, 그런 삶을 살도록 힘쓰라는 권면을 한 의미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구절은 가톨릭의 주장처럼 특정계급의 존재와
그 특정계급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규정하는 구절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믿음대로 생활하면 하나님께 더욱 인정받을수 있다는
차별없는 만인사제적 관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믿음있는 자로 제시된 엘리야 역시 외형적으로 제사장직급으로 구별된자가 아닙니다.
엘리야는 선지자인데, 구약시대의 제사장직급이 혈통적 증거를 가지는 것과 달리,
선지자직급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외형적 구별의 표식이 없으며,
단지 그의 신실함의 여부로써 선지자인지 거짓선지자인지 판별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무릅쓰고 우상숭배 요구와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또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은 자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야고보 사도가 여기서 의인의 예로 든것입니다.

그러니 우상숭배할 것을 가르치고 수많은 사람들을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자가
자칭 사제라는 유별난 감투를 쓰고 의인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의인이 아닌 것입니다.
계급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하나님 뜻에 맞는 삶을 사는 자가 의인인 것입니다.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③ 새로운 제사장은 죄도 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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