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프로테스탄트를 학살한 나라

잘 알다시피 프랑스는 가톨릭이 국교인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16세기 초에 프랑스 내에는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생겨났는데,
많을때는 프로테스탄트가 전체 국민의 3분의 1이상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톨릭은 왕권을 이용해 프로테스탄트를 공격하였는데,
1521년에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1515~47 재위)는 루터의 저서의 출판을 금지했으며
1534년에는 한층 더 나아가 이를 탄압하는 일련의 칙령을 반포하였습니다.
프랑스 왕 앙리 2세(1547~59 재위)때는 보다더 프로테스탄트를 억압하였으나,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즉 위그노들은 날로 그 세력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프랑스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트를 공개적으로 대학살하기 시작합니다.
가톨릭 가문인 "기즈"가의 프랑수아 드 기즈가 군대를 동원해 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한 것이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가톨릭 못지않게 성장한 프로테스탄트도 이제 무력으로 대응함으로써,
16세기 말까지 8차례에 걸쳐 신구교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1570년에 양측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프랑스의 신구교를 대표하던
프랑스왕 샤를 9세의 동생과 나바르왕 엔리케 간에 혼담이 오갑니다.
바로 이 혼담을 빌미로 가톨릭이 프랑스 내의 프로테스탄트를 대학살하게 됩니다.

당시 파리에서 이 둘간에 혼인식이 치러질 무렵이 성 바돌로메를 추모하는 성 바돌로매의 날이었습니다.
혼인식에 참석하려고 올라온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이 죽은 성 바돌로매에게 예를 표하는 의식을 가진날
가톨릭은 무방비 상태의 프로테스탄트들을 대학살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살이 오늘날까지도 바돌로매 학살로 불립니다.

모든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이 우선적으로 학살되었습니다.
프랑스 왕의 오른팔이던 콜리그니 장군도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란 이유로 총살되고
머리는 잘려 로레인의 추기경에게 선물되어 교황청으로 보내졌고 그 시체는 거리에 끌려다니게 됩니다.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뿐 아니라 프랑스 내의 모든 프로테스탄트에게도 학살이 가해집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하기위해 가톨릭 시민군이 소집되고 파리를 탈출할 수 있는 성문을 굳게 닫힙니다.
파리는 학살의 도시가 되었고, 파리시내 전체에서 모든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살인이
프랑스 정권의 비호 아래 합법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파리의 가톨릭 교도들은 '프랑스와 가톨릭을 위하여'라는 구호아래 살인마가 되었고,
프로테스탄트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으며
파리의 모든 거리는 숨이 끊어지는 프로테스탄트들로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가톨릭 신부들은 한 손에는 십자가를, 다른 한 손에는 단검을 들고서
살인자들의 우두머리들에게 가서 "친척이나 친구들도 봐주지 말라"고 그들을 훈계합니다.
가톨릭은 왕의 허락을 받아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의 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합니다.

오렌스에서는 1000명이 살해되었고
로렌에서는 6000명이 살해되었습니다.
펜나에서는 안전을 약속한 후 300명을 학살했습니다.
멜디스에서는 200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사마로브리지에서 그들은 프로테스탄트에게 평화를 약속한 후 100명 이상을 살해했습니다.
안티시도에서는 100명이 살해되어 강으로 던져졌습니다.
오리언즈에서는 감옥에 투옥된 100명이 분노한 군중에 의해 죽음을 당했습니다.
로첼레에서는 18,000명이 죽었습니다.

리용에서는 800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여기서 부모에게 매달린 어린이들과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안고있던 부모들이
칼과 피에 굶주린, 스스로를 카톨릭 교회라고 칭하는 자들의 희생양이 됩니다.
여기서는 300명이 가톨릭 주교의 집에서 살해되었고,
가톨릭 수도사들은 그들이 매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보덱스에서는 설교 중에 카톨릭 교인들에게 살육하라고 충동질을 하곤 했던
악한 수도사의 부추김으로 264명이 잔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들 중의 몇 명은 상원의원이었습니다.
비슷한 신앙심의 또 다른 가톨릭 우애단체가 메인의 아겐디컴에서 유사한 학살을 행했습니다.
거기서 종교 재판관들의 사탄적인 제안으로 가톨릭 교도들이 프로테스탄트에게 돌격해서
그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집을 약탈하고 그들의 교회를 무너뜨렸습니다.

투린의 수장은 자신의 목숨 값으로 많은 돈을 지불했음에도
곤봉으로 잔인하게 두들겨 맞았으며, 옷이 벗겨지고, 강에서 거꾸로 매달렸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그들은 그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강에 던졌습니다.

브로이스에서 살인자의 우두머리인 구이세 공작은 그의 군인들에게
약탈품에 달려들며 그들이 찾아낼 수 있는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을 죽이거나 익사시키도록 했습니다.
이 말에 그들은 나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여자들을 더럽힌 후 그들을 살해했습니다.
구이세 공작은 미레에 가서 똑같은 폭동을 며칠 동안 자행했습니다.
미레에서 카세보니우스라는 관료는 강에 던져졌습니다.

안쥬에서 그들은 관료인 알비아커스를 살해했으며,많은 여인들이 더럽혀지고 거기서 살해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두 자매가 있었는데 그들을 아버지 앞에서 추행한후 그들과 그 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논네에서는 안전을 조건으로 항복하자,
남녀를 조건 없이 무차별적으로 살해하였고, 거리는 슬픈 외침 소리가 울렸으며,
피가 흐르고 집들은 파렴치한 군인들이 던진 불로 화염에 뒤덮여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숨어있던 곳에서 남편과 함께 끌려 나와서
먼저 잔인한 군인들에게 추행을 당한 후에 강제로 그녀 남편의 내장을 찌르게 했습니다.

마티스콘 시에서는 팔과 다리를 자른 후에 그들을 죽이는 것이 스포츠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방문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들은 때로
"사람들이 저렇게 잘 뛰어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바레(Barre)에서도 극악한 잔인성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어 극심한 분노로 그것을 씹기도 했습니다.
성으로 도망했던 사람들은 항복했을때 거의 모두가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오거스토보나에서는 사람들이 파리에서의 학살 소식을 듣자마자
프로테스탄트들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문을 닫고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부지런히 찾아나서서
감옥에 넣고는 후에 야만스럽게 그들을 살해했습니다.

아바리콤, 트로이, 토울로우스, 로엔과 다른 많은 곳에서도,
도시에서 도시로, 시골로, 읍으로, 온 나라 전체에 걸쳐 그와 똑같은 잔인성을 실행했습니다.

그 결과 일주일만에 약 10만 명의 프로테스탄트가 프랑스 전역에서 조각조각 찢겨졌습니다.
미슐레는 "성 바돌로메의 날의 대학살은 하루가 아니라 온 계절에 가득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그 기쁨이 너무나 엄청나서
그들은 하루를 축제일과 희년으로 정하고 모두가 이것을 지켰고
그들이 고안해낼 수 있는 모든 기쁨의 표현들을 드러내었습니다.
교황은 축포를 떠뜨리고 환희의 날을 선포했고, 영광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572년 위그노들의 학살"(Ugonottorum Strages 1572)이라고 적힌 기념주화를 만들었습니다.



바돌로메 대학살은 다음과 같이 새겨진 문구와 함께 바티칸의 왕의 홀에 그려져 있습니다.

"교황은 콜리그니의 죽음을 승인한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이후에도 계속 학살되어서 전멸되었습니다.
현재도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는 전체 국민의 1% 내지 2%에 지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가 이렇듯 몰락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말만 프로테스탄트였지, 형상과 영에게 예를 표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학살의 명칭이 죽은 바돌로매에게 예를 표하는 날인
성 바돌로매의 날의 학살로 칭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를 구하지 못하셨겠습니까?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들이 속수무책으로 프랑스 가톨릭 교도들에게 전멸당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상을 겸해서 섬김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사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종교개혁 당시의 프랑스의 폭발적인 프로테스탄트 성장은 참으로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 추기경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전체 국민의 절반이 프로테스탄트라고 추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성장은 근래에 유래가 없다고 말해지기까지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도 오늘날에도 우상숭배의 길을 걸어가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는것 또한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의 우상숭배에 타협하는 자세와 똑같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심판받을 차례입니다.
가톨릭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고 프로테스탄트에게
태양숭배며 마녀사냥이며 원주민 학살, 종교재판 등등의 자신들의 죄악을 죄다 뒤집어 씌우고 있는
오늘날의 인격적인 테러쯤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우상숭배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프랑스에서든 한국에서든 차별이 없습니다.

신 8:20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④ 프로테스탄트를 학살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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